[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후기] 무력한 시민의 무력한 사랑.
 글쓴이 : 밝달
작성일 : 10-01-25 09:04 조회 : 3,894  

1. 중부경찰서 맞은 편

<갤러리M>을 안내하는 글에 그 위치가 '중부경찰서 맞은 편'이라고 쓰여 있었다. 

부모님께서 경찰서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사진전에 가기를 잠시 망설였다.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해도 되는 것인지...

물론 농담이다.



먼저 수인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박노해 시인의 옛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던 시인의 사진전을 경찰서 맞은 편에서 연다고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2. 라 광야

<갤러리M>에는 세상에서 가장 광활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겸손한 시간은 스스로 흑백이 되었다.

못해도 오천백다섯 살은 먹음직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는 듯했다.

시인의 사진들은 깊은 곳에 봉인되었던 선하고 정갈한 마음을 

끌어올려 사람들의 표정에 펼쳐놓았다.  

매우 아름답게 슬픈. 그리고 선한 눈물.

전쟁의 상흔처럼 갈라졌던 마음에 강의 범람이 느껴졌다.  

곧 무지개가 뜰 것이다.




3. 무력한 시민의 무력한 사랑

집에 있을 때는 항상 YTN을 켜놓는다. 뉴스를 즐긴다는 중년의 티를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YTN을 즐겨 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한 가지 있다.

이라크전쟁 때였다. 모든 방송사에서 속보라며 특보라며 전쟁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 때 YTN 뉴스 진행자의 표정이 가장 슬펐다.  

잠결에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다.'라는 시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노동의 새벽>이 떠올랐다.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하던.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민요에 매료되었던 젊은 시절, 한(恨)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리고 한은 '수긍할 수 없는 체념'이라고 혼자 결론지었다. 

절망과 체념 속에 꿈틀거리는 힘. 쉽게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강한 분노와 거부.

어우러지면 변혁을 이루기도 하는.

내가 찾은 것 중에서 그 의미가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시구가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였다.

섬뜩하게 무서운 체념이었고, 결국 변혁을 이루는 힘이 되었다.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이 시구는 정말 무력하게 들렸다.

설마, 박노해 시인인데... 싶은 마음도 한 켠에 있었다.

확인을 해야했다. 설마 박노해 시인인데...

사진이 말해주었다.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넉넉한 체념이다.

하지만 훨씬 간절한 호소다. 

어쩌면 꽉 막힌 작업장에서가 아니라 끝없는 광야에서의 외침이기 때문에 

메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메아리가 아니라 함께 외쳐야 하는 것 같다.

무력한 시민의 무력한 사랑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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