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박노해 첫 사진전을 시작하며..시인이 전하는 편지
 글쓴이 : 라 광야
작성일 : 10-01-07 16:58 조회 : 1,978  



눈길을 헤치고 이렇게 먼 광야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중동은 우기에 접어들어서 막 첫 비가 내립니다.

광야의 들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파란 밀싹이 돋기 시작합니다.

제가 자유의 몸이 된지 벌써 10년입니다.

10년동안 가난과 분쟁현장으로 광야의 낙타처럼

국경너머 분쟁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저의 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습니다.

 

폐허더미에서 검은연기가 피어 오르고,

분쟁현장에서 미칠듯한 흐느낌 소리가 들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곁에서 울어주고 안아주고
아이들과 바람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오래된 만년필을 들고 시를 써온 제 손엔 어느새 낡은 흑백카메라가 들려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빛으로 시를 써왔습니다.


언제나 진실은 현장에 있습니다.

약자들이 가장 필요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도 카메라였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극적인 장면을 찍고, 충격적인 순간을 찍고서
그냥 떠나는
사진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삶의 현장을 혈육처럼 나직히 스며들어 갑니다.

그럴 때 그 분들은 저의 흙백 필름에 영혼에 지문을 새기듯,

가만히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기 전 광야의 낙타처럼 무릎을 꿇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분쟁현장을 다니면서 서구와 이슬람 국가에 가면

저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온 몸이 다치고 상처난 몸으로 한국 땅에 오면

오랫동안 생애 시차를 느낍니다.

코리아는 이미 너무 깨끗하고 너무 풍요롭고 너무나 속도가 빠르고

그래서 빠르게 관심도 사라져 버리는 그런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면 한미동맹과 전투병 파병에 걸림돌 취급을 받고,

어느쪽에선 빨갱이 짓을 한다. 변절한거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국경을 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차가운 무관심 속에 부딪혀 나갑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 입니다. 

이미 이 지구시대, 우리가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의 78%

국경너머 사람들의 땀과 자원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고,

누군가의 풍요는 누군가의 궁핍을 전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가족과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지만

국경너머 다른사람들과 다른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애써 배워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동안 분쟁현장에 평화활동을 하며
폐허더미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그들을 폭격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는 전쟁에 반대하자고...

저희가 지난 10년동안 광화문에서 매일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단 3초도 견디지 못하고 전쟁같은 일상에 살아가는

한국사회 시민들을 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금 중동의 광야에는 이 시각에도 폭음이 울리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여자들과 아이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쿠르디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이 꿈꾸는 것도 우리와 똑같은 삶의 꿈입니다.

분쟁현장에서 제가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삶이 뭐라고 생각하니.."

"죽이 않고 사는거요... 죽지않고.."

"샤이르박, 우리 잊지 않고 또 찾아오실거죠?"

"꼭 다시올게.."


제가 10년간 찍어온 사진으로
난데없이 사진전을 연 까닭은

이아이들과의 제 생을 건 약속이고, 비원의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진실은 가장 힘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가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한걸음 한걸음 나직합니다.

제가 소리없이 나직하게 알려왔던 이 중동 사람들의 진실과

죄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아픔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선한 마음속으로 전해질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날씨는 춥더라도 마음만은 따뜻한

오! PEACE 코리아의 국민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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