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대학생과의 대화 1] 어떻게 사람의 심장이 둘로 나뉘어질 수 있나요?
 글쓴이 : 라 광야
작성일 : 10-01-21 08:30 조회 : 14,255  

19일 박노해 사진전 작가와의 대화 시간은 그 어느 대화 시간보다 특별했습니다.
미래에 대해 가장 절실한 물음을 품고 있는 대학생들과의 대화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전의 작가와의 대화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인생상담^^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진지한 생의 물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앞에 두번에 걸친 대화시간보다 두배로 많은 질문과 두배로 긴^^ 대답.
그리고 몇배는 더 밀도 있었던 대화 내용을 모두 정리하기 위해
3부분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첫번째 부분은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첫 자유 앞에 '내던져진' 대학생들에게
좀 더 멀리 국경너머로 '진로'를 정한 친구들에게

두번째 부분은
이미 대학생활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친구들에게
내가 변해간다고 느끼는 그대에게

세번째 부분은
그 모든 친구들에게 박노해 시인이 만난 중동의 젊은이들이 전하는 말
그리고 박노해 시인이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대학생들과 박노해 시인의 대화, 그 첫번째 여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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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사 _ 박노해

반갑습니다.
팔팔 뛰어 놀 어린 나이부터 실내에 갇혀서
갑갑한 책상과 의자, 이 지겨운 감옥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또 앉혀놓고 인사를 드리게 돼서 미안합니다^^

사진

지금 광야에는 열 달 동안 뜨거운 불볕이 내리 쪼이다가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첫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광야에 비가 내리면, 죽어있던 땅에 파란 밀 싹이 돋고 눈부신 꽃들이 피어납니다.
광야를 걷다가 꽃을 밟으면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자신을 밟는 발에 향기를 가득 전해줍니다.

올리브 나무도 모래바람 속에 시달리다가 지금 막
세작, 새의 혀와 같은 가느다란 올리브 새싹 돋아나고
해발 4천 미터 자그로스 산맥 만년설에서부터 맑고 시린 바람이 불어 옵니다.
그러면 광야의 청년들은 대자연의 바람과 새소리와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걷는 독서를 합니다. 낭송을 하면서요.
지식을 쌓아서 더 높아지고 똑똑해져서, 경쟁력을 갖춰 앞서가는
자기강화의 독서가 아니라 자기 소멸의 독서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붙잡는 작은 나, 자기 중심주의, 이기심을 비워 버리고 비워 버릴 때
신성한 빛과 기운과 사랑이 차오르고,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는 좋은 관계가 되고
남을 딛고 앞서가기 보다 나를 이겨 한 걸음 나아가는
행복과 평화의 길이 된다는 걷는 독서입니다.

오늘 마침, 여러분이 온다고 하니까 광야의 첫 비가 오네요.
요즘 가장 바쁘다는 대학생들이 이렇게 모였네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희망이 없다고 하는 것은 헛된 희망을 쫓아 다니기에
진정한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바로 하고, 다른 많은 것들을 버리고 와주신
여러분들이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첫 비가 오고 첫 얼굴을 보고 오늘은 좋은 날,
오늘 우리가 불꽃의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를 떠나서, 추상적일 수 있지만
선생님은 자유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고등학교 자율학습에 벗어나는 것이 자유는 아닌 것 같은데..

질문한 친구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나요?
(예, 아마도… 돈 문제를 제외하곤 자유로운 편 같아요^^)

저는 자유의 본질은 숲 속에 선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자유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홀로 우뚝 선 나무나 잘 가꾸어진 정원수처럼 보호받고,
나는 별로 부족한 것 없고, 욕심 좀 안 부리면 되지 그런 나무가 아니라.
숲 속에 함께 서 있는 그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제가 미국 뉴욕에 가서 중고등학생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애들이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고 자란 말이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네 멋대로 해라’ 입니다.
그런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 월셋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분쟁 현장에 나갈 때마다 군인들에게 개머리 판으로 맞으며 고생하지만
스스로 정말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제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책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에 가면 <조고각하 照顧脚下> 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그 말은 ‘너의 발 밑을 돌아보라’,
그대가 먹고 쓰고 꿈꾸고 생활하는 물질적 기반을 돌아보라,
네 존재의 밑바닥을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심오한 뜻 같지만 본래는 신발 정리 잘 하쇼, 그런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지구마을 전체, 67억으로 보면 상당히 상층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심화되는 양극화, 심각한 청년 실업,
똑같이 일하고 생산해도 반 토막 취급 당하는 비정규직 850만,
묵묵히 농사 지어도 4년 사이에 150만이 사라지는 보람도 존중도 없는 농민
이 분들이 겪는 사회적 불공정성은 반드시 극복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67억 인류의 눈으로 우리 존재의 밑바닥을 돌아봅시다.
우리나라 경제의 78% 정도가 수출 경제입니다.
식량 자급률은 20%도 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 값싼 노동력으로 우리의 생활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마시는 물 한 잔에도, 메모하는 펜과 종이에도
최하 50개국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신문만 몇 십 트럭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종이를 소비하는데
왜 우리나라에 푸른 숲이 남아 있을까요?
필요한 나무들을 힘 없고 가난한 나라에서 베어오기 때문이죠. 
아이티가 생물종 다양성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나라였고,
국토의 60%가 울창한 산림이었는데 지금은 2%만 남아있죠.
그러니 이번처럼 자연 재앙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재앙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한정된 지구자원과 세계화한 경제구조 속에서
누군가의 풍요는 다른 누군가의 궁핍을 전제로 합니다.
세계화 시대라는 것은 우리가 먹고 쓰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지구적 무대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인류의 70% 가까이가 하루 2-3 달러 미만으로 생활해야 하고,
분쟁과 기득권자들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시대에 ‘내가 자유롭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67억 인류 모두가 내가 먹고 쓰고 입고 생활하는 대로
살아도 좋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가난한 서민들 수준으로 
67억 인류 모두가 생활하기 시작하면
지구가 10개는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지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정신적 자유만이 아니라
지구 시대 사회경제적 자유에 대한 근원적 겸손함을 가지고 
가난한 나라에서 농사 짓고 험한 공장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직장보다는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데요.
여러 나라에서 평화활동을 하신 분으로서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글로벌 코리아의 꿈이 상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인기 있는 긴급 구호가들이 나온 이후로요. 
하지만 그 꿈이, 내가 국제기구 공무원, 긴급구호 스타가 되어서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동시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불행이고, 지구마을 사람들도 그런 사랑은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장이 둘로 나뉘어질 수 있나요?
성공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사랑도 하겠다.
과연 인생에서 그런 것이 주어질까요?
도토리 알이 성공도 하고 사랑도 하겠다고
반 토막씩 심어지면 참나무는 없습니다.

젊었을 때 목숨 걸고 혁명운동을 했던 사람도,
세월이 지나고 우여곡절을 겪다 보면, 유혹에 따라서
첫 마음이 추구하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나는 성공과 사랑을 함께 취하겠다고 머리 굴리는 사람은
나중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높은 지위를 가지면 또 어떻게 될까요? 저는 두렵습니다.
힘을 가진 다음에 사랑을 하겠다고 하면, 그 힘 조차 경쟁무대에 쓰이게 됩니다.

저는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닙니다.
너무 절실하고 너무 필요하니까 시도 썼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는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이 너무 가난해서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슬프고 괴로울 때는 시詩라는 기둥에 저를 의지했습니다.
슬플 때 쓰고 괴로울 때, 철야노동 하다가도 기름 묻은 작업일지 뒤에,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과 천대멸시 속에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밥벌이 기계로 전락하지 않고자 피눈물로 시를 썼죠.
가진 게 없어도 “나는 존엄한 인간이다” “꿈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는
소리 없는 저항이고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그 시를 “어느 신문에서 너무 좋아서 베낀 거다”라며 현장 동료들과 몰래 돌려 읽으면,
동료들이 “이게 내 마음이다”며 함께 울곤 했습니다.
“아, 이 시가 힘이 되는구나” 하다가, 어느 순간 시집을 내볼까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동안 썼던 몇 천 편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시집을 낼 욕심이 들어 쓰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시경詩經의 삼백여 편을 가리켜 한 마디로 사무사思無邪 라고 하였죠.
‘사심 없이 참하고 진실하기에 천 년을 울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영물입니다. 출세를 위해서,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쓴 작품은
자기 시대와 대중을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시대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누구 하나의 삶도 바꾸지 못합니다. 

정말 사랑을 위해서 필요하니까. 내가 너무 힘이 없어서
필요와 절실하기 때문에 하다 보니까.
시도 쓰고, 사진도 찍게 되었습니다.
내일 모레는 사진 안 할지도 모릅니다. 제 인생을 누가 압니까.

왜 지금 다 보이라고 하는 겁니까.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 ‘네가 잘하는 것을 해라’라는 말 많이 듣죠?
그런 말 고맙기 보단 듣기에 괴롭지 않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의자에 앉혀놓기만 했으면서,
그래서 무엇을 시도할 기회도, 진정한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할 자유도 가진 적이 없는데,
갑자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난 중에 가장 향기로운 풍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닷가 바위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7년을 지낸 다음에야 싹이 틉니다.
그런데 그 풍란에게 올해 다 꽃을 피워내라고 다그칩니다. 
지금 당장 시장 매장대에 진열되어있는 상품들 중 어느 것 하나를 찍으라고 하는 거죠. 
그건 우아한 폭력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우주에 단 하나뿐인 존재인데,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자기 자신의 때가 있고 리듬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남과 똑같은 잣대로 서열화 짓지만 않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빛나는 고유한 존재가 되고
경쟁하지 않으며 살 수 있습니다.



순수한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고,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깁니다.
모든 일은 혼자 하는 것 아닙니다.
경쟁력을 갖고 나 혼자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아무도 믿지 못하고 동료들에게도 신뢰받지 못합니다.
순수한 영혼과 가슴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 믿고,
서로가 나눠주고 도와주고 함께 합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노동자 시절에는 대학생 친구 하나가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친구들과 만나 함께 운동을 했죠. 
국경 너머 분쟁 현장에서도 저를 모두 반겨줍니다.
너무 불쌍해 보이니까요. 먼 나라 이런 곳까지 홀로 찾아와서,
저렇게 열심히 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여자들과도 잘 어울리니까 신기하고 고마운 모양입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찾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는지
어린아이도, 사막의 돌멩이 하나도 모두 압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당신의 카메라는, 당신은 거짓말 할 것 같지 않다,
진실을 전해 달라며 숨은 사연도 얘기하고 사진도 찍게 해줘서
이렇게 사진전도 열게 된 겁니다.

이번 사진전에 오신 분들이 우는 모습을 참 많이 봤습니다.
아마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진전이 있었을까 싶어요.
자극적인 장면들은 일부러 모두 빼버렸는데,
그래도 가슴과 가슴이 서로 통하는 거죠.

꿈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직업이라는 세계에 왜 장엄한 자신을 집어넣습니까.
삶은 무엇과도 대체되지 않습니다.
삶을 그대로 사십시오.

심장을 둘로 쪼개지 말고,
씨앗 때부터 너 자신을 분열시키지 말고,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사랑으로 가다 보면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곧 업데이트 될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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