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태양의 광야 너머로 떠오르는 신성한 무지개
 글쓴이 : speranza
작성일 : 10-03-02 16:15 조회 : 3,192  

중동이 전세계의 화약고가 되어버린 이유는 석유라는 검은 피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열망 때문만은 아니리라는 것이,
박노해의 사진전 "라 광야" (Ra Wilderness)의 도록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이미 박노해의 중동지역 평화활동의 기록이었던 두 팜플렛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에서, 그가 왜 그 위험한 지역,
전쟁의 폐허와 폭격의 잔해를 헤치고 다니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과 '풍경들'을 사진찍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시인이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물론 사진 작가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도, 예술 사진 작가도 아니다. 시인이다. 펜으로 시를 쓰는 것과 카메라로 빛을 기록하는 것 사이에는
문자의 역사와 근대기술의 역사 만큼 간극이 있겠지만,
박노해에게서는 마치 두 가지 기록과 표현의 매체가 구분되지 않는 듯하다.
그것은 시와 사진이 타인들의 -- 결국은 자신의 --
삶의 고통과 환희를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도구들이기 때문 만은 아니다.
시와 사진이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보는 것 이상의 어떤 무엇을 기록하거나 표현해주는
그런 도구들이라서가 아니다.
박노해에게서 -- 결국 우리들에게서 --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사람들"과 "풍경들"이다.

텔레비전, 인터넷, 잡지, 신문 등 무수한 대중 매체를 통하여,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개발 혹은 식민의 역사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지역에서 우리들에게 보내어진
"이미지들"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목적이 타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든, 자본의 논리 혹은 (종교적인) 인류애에의 호소이든,
우리를 가슴저리게 하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미지들이 있다.
아니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이미지들이 넘쳐 흐른다.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웹브라우저 창을 닫고, 신문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나서, 다시 눈물을 닦고... 잊는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더 이상 굶고있는 아프라카 아이, 미군의 폭격에 죽은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어머니,
거대한 착취의 연결고리 속에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노동하는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
이들의 이미지는 고통받는 타자라는 판에 박힌 상징 기호로 치환되고
더 이상 우리의 감정이입을 요구하지 않는 무딘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어떻게 이 무딘 이미지를 다시 갈아서 날카롭게 할 것인가, 어떻게 보는 이들이
이 날카로운 이미지에 찔려 아프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찔려서 아픈 이들이 그 이미지의 대상들에게로 몸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다큐멘터리 사진, 그 중에서도 참여적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는 중요하다.
박노해의 사진은 사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지만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비록 "좋은" 사진을 찍어 내더라도 그것은 작품이 되기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박노해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있다. 나는 그가 몇 년전 성남훈의
"유민의 땅"이라는 사진전에 남긴 축문,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를 기억한다.




오늘 이 땅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난무하고 있다.
기발하고 쿨하고 섹시하고 세련된 사진만이 난무하고 있다.
대상이 무엇이건 아름다운 '그림'들은 이 시대 구원의 종교가 되고 있다.
가난과 노동과 고통스런 삶의 진실을 캐들어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멸종되어가는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마저 비싸게 팔리는 '예술성'과 '상품성'을 강요받는 시대에,
소중한 그대여, 부디 탐미적인 전람회장의 거장이 되지 말기를.
거대 자본의 프로젝트와 거대 자선단체의 홍보사진에 안기지 말기를.
부디 노벨상을 쫓아다니는 자들처럼 헬기 타고
사진 찍는 스타 작가가 되지 말기를.
우리 비록 검은 총구의 숲과 참담한 빈민 현장에서 마른 빵을 씹으며
문득문득 비행기 값과 필름 값을 헤아릴지라도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외면당한 채 골방에서 검은 눈물을 흘릴지라도
발바닥으로, 고단한 발바닥으로, 선한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에
고통과 슬픔의 流民들을 고스란히 안겨주는 진정한 작가이시길.
그리고 부디 우리 몸 상하지 말기를,
작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 상하지 말기를.
뒤늦게 낡은 카메라를 든 이 '연상의 후배'는 경애의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니.


지금 이 순간에도 流民들의 고통과 슬픔이 지구 위를 흐른다.
우리가 딛고선 발밑에서 얼음 강처럼 금이 가며,
피와 눈물과 불안으로 흐른다.
그들이 자기 몫의 정량을 찾아 자기의 땅에서 푸른 나무숲이 되는 날까지
우리는 다시 첫 마음의 자리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하리라.
태어난 별자리에 작가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운명이라면
우리는 오직 낡은 카메라와 오래된 펜 하나를 무기로 들고
지구 위를 아프게 흘러가는 流民들 곁으로,
그들을 밟고 쏘고 빼앗고 몰아내는 국경 없는 적들 앞으로,
이 새벽 다시 홀로 고단한 길을 떠나야 하리라.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http://www.imagepress.net/review/exhibition/exhibition.html



그가 성남훈에게 바라던 그 모든 것을 다시 박노해에게 바란다.
그리고 사진이란 그리고 시란 몸으로 찍고 쓰는 것임을,
그것을 보고 읽는 것도 몸으로 하는 것임을, 그래서 결국 사진이든 시든 몸들의 대화,
몸들의 싸움, 몸들의 사랑임을 잊지 말기를...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의 침략은 그 목적이 석유에 있기 이전에,
그 오래된 문명의 낡은 광야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으려는
탐욕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얼마나 이 사라진 것들에 대해 익숙한가.
근대화 100년에 우리의 광야, 우리의 낡고 오래된 삶의 터전,
우리의 문명은 얼마나 남의 것들로 채워졌던가. 우리나라가 이제 제국주의 전쟁에 총들고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총칼로 폭격으로 겁준다 한들,
광야 너머로 떠오르는 저 신성한 무지개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는가.

박노해의 [라 광야] 사진전은 이미 종료되었지만 [라 광야]에 대한 정보와
30여장의 사진들을 http://www.ra-wilderness.com/에서 볼 수 있다.
사진전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사진전 도록을 주문했더니
시인이 정성껏 몇마디 적어서 보내주셨다.


 



아, "밥 꼬박꼬박 드시고, 많이 걷고, 많이 웃고..."
시인의 글 속에 담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영어와 아랍어로까지 번역되어 있는 이 친절함.
중동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선물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들 안에서조차 복잡하게 얽혀있을 많은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의 차이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고통의 기록을 선물로 준다는 어색함 때문에, 여전히 망설이게 된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devenir/259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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