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작가와의 대화 2] "영혼이 부르는 대로 가다 보니 그 현장이 저를 바꾸었습니다"
 글쓴이 : 라 광야
작성일 : 10-08-03 18:58 조회 : 8,686  


17일 작가와의 대화, 두 번째 시간에도 
발디딜틈 없이 많은 분들이 라 광야를 찾아 오셨습니다.
박노해라는 거친 이미지, 중동과 분쟁이라는 주제, 
그리고 유래 없이 추운 날씨까지 몇 고비를 넘고 넘어 오신 많은 분들을 보니, 
우리 사회에 희망의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카메라를 든 이유가 무엇인지, 그의 사진 속에는 슬픔만이 흐르는지 
박노해 시인이 처음 분쟁현장으로 뛰어든 사연, 사진과 시에 대한 이야기까지…
불꽃처럼 뜨거웠던 그 만남의 시간을 전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인사

폐허와 폭격과 불안 속에서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힘 없는 우릴 지켜보고 귀 기울이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라며 
지난 10년, 제 손을 붙잡고 울부짖던 그 분들의 아픔을 품어주기 위해서 
광야까지 찾아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요즘 다들 바쁘시죠, 힘드시고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우선순위를 바로하라’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스펙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데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니겠습니까. 
슬픔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들께 
경외의 마음을 바치며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박노해’라는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내가 아는 그 시인이 맞나 했는데, 맞더군요^^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되신 건가요?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요즘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 박노해 시인이 노후 대책으로 
동네 사진관 차리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구요. (웃음)

예, 맞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국경 너머 지구마을에 동네 사진관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분쟁 지역을 다니다보면, 외간 남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검은 챠도르의 여인들이 
제 손을 잡아 끌며 총탄투성이 자기 집과 핏자국 난 안방과 가난한 부엌 살림을 보여주며 
우리의 진실을 전해달라고 울먹입니다. 당신은 거짓말 할 것 같지않다고요. 

그런데 저는 무력한 시인이지 않습니까. 
기자증도, 외교관증도 없고, 거대한 NGO 소속도 아니죠.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뿐입니다. 
저는 그저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그치면 아이들과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저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진기를 들고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인이 펜을 들고 시를 쓰다 책상 앞에서 죽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이상 저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집속탄과 불발탄이 즐비하게 깔려 있는 폐허가 된 마을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정말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러다가 웃자, 웃으며 헤쳐 나가보자 하고 들어가면 
멀리 폐허더미에서 주민들이 보다가, 유령인줄 알고 깜짝 놀라다가 
몇 십일 만에 사람이 나타나니 오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소리칩니다. 

카메라를 든 순간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기에
저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들을 보니 희로애락 중에 분노와 슬픔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감정들을 더 표현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기쁨과 즐거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아마 분위기에 압도당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웃음)

저 빵 굽는 어머니는 새벽 일찍 가족들을 위해 일어나 
자신이 씨 뿌려 거둔 햇밀을 직접 빻아서 소금을 넣고 굽고 계신 모습을 찍은 겁니다. 
슬픔과 분노가 가슴에 있지만, 기쁨과 긍지가 있습니다. 
105살 먹은 알 자지라의 움미(어머니)에게도 삶의 긍지가 느껴지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중동의 골목길에서는 폭음이 울리고 
아이들과 여자들의 울음 소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하루 100명 이상이 죽어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이들이 내복과 빵도 없이, 
추위를 가릴 담벼락 하나도 없이 떨다가 죽어갑니다. 
쿠르디스탄은 폭설이 내려, 눈이 강제한 평화로 터키군과 
15살 쿠르드 소녀 게릴라가 휴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외투 한 벌 없이 추워서 떨고 있고요. 

그러나, 저는 현장에서 울지 않습니다. 처참한 현장에서 제가 눈물을 흘리면 
애써 참았던 그 분들의 가슴에서는 통곡이 터져 나오기에 
일부러 웃고 장난치고 농담을 많이 합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땐 카메라로 제 눈을 감춥니다. 
그리고 홀로 어둠 속에서 시를 쓰면서 그때서야 소리 없이 통곡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참 많이 웃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삽니다. 
가난과 분쟁 속에서도 어쩜 이렇게 낙관적이고, 
따뜻하고 외부인에게 우정과 환대의 마음이 있는지요.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기에, 13억 중동 이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신성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쁨이라는 것도 깊은 슬픔만큼,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는 만큼 
광야의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삶의 신비가 아닌가요. 

폐허더미에서도 슬픔과 아픔을 공유하면서 서로 협동하고 
강인한 삶으로 다시 일어서며 밝은 표정을 짓고, 
최선을 다해 절제하고 서로 나누고 보살피고, 
애써 무너진 집을 쓸고 닦고 세우며, 
저들이 세 번 네 번 폭격하면 네 번 다섯 번 
재건하고 평화의 나무를 심어갈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저항이라고 말씀하시는 그분들이 보여주시는 
인간의 위엄을 함께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처음 분쟁 지역에 가게 되신 계기와 목적이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것인지요.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을 하겠다는 TV 기자회견을 봤습니다.
전쟁이 났는데 나는 몇 달 간 텔레비전으로 폭격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절망스러웠죠. 그래도 저는 전쟁을 멈추게 할 아무 힘이 없잖아요. 
그저 폐허더미에서 공포에 떠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까요 
새벽 4시에 그 뉴스가 나왔는데, 계속 앉지도 못하고 방 안을 서성이다가 
아침이 되자 마자 빚을 얻어서 비행기 표 값만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가고 나니, 현장이 운명을 바꾸더라고요. 
삶은 생각이 아니라 발바닥이 바꾸는 것 같습니다. 
발바닥에 사랑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으로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교활하고 가슴은 변덕스럽습니다.
사랑은 발바닥입니다. 누군가가 부를 때 달려가는 것이지요. 
발과 손이 가면 변덕스러운 가슴과 교활한 머리도 함께 따라갑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도 복잡한 일상 속에서 사랑을 따라 
자신의 두 발로 오신 분들이지 않습니까
저도 영혼이 부르는 대로 가다 보니 그 현장이 저를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갈 것인가? 
그것은 인샬라! (신의 뜻대로) 하늘의 뜻 대로 아니겠습니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가 글을 쓰거나 곡을 쓰는 것은 이제 어렵고, 
사진을 찍는 것은 가능한 비주얼 시대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진작가라는 말이 참 어색합니다. 요즘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 아닌가요?
휴대폰에도 카메라가 있는 시대인데^^
저는 늘 그래왔듯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너무 절실하고 너무 필요하니까, 시를 썼고 카메라를 들었을 뿐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옛말에 ‘국가불행 시인행 國家不幸 詩人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대가 어려움에 처하면 시인은 절창의 시가 나오기에 좋다는 거죠.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이 글귀를 보고는 화가 나서 대구를 붙였습니다. 
‘시인불행 민중행 詩人不幸 民衆幸’이라고요. 
시인이 불행할 때 민중은 좋은 시를 향유하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가 정말 평화로운 시대인가요.  
민주화와 풍요가 주어졌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카스트 시대가 되어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사회적 양극화는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850만 가까이가 똑같이 일하고 생산하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반토막 인생들입니다. 
청년실업도 심각하지요. 투입비용 대 아웃풋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회 첫 걸음에 자기 밥도 벌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농민들도 얼마나 모독 당하고 있습니까.  
4대강 파괴를 반대하면서 ‘삽질’경제, ‘삽질’을 멈추라 하는데, 
이건 농민에 대한 모독이죠. 
그런 말 하는 분들, 자기 손으로 곡식 한 톨 안 길려본 사람들이거든요. 
농민 분들 그런 얘기 나오면 텔레비전 꺼버리라고 하십니다. 
삽을 모독하지 마라, 어디 삽과 호미가 세상 망친 적 있느냐 
오히려 삽 한번 안 들어본 사람들이 세상 망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만약, 제가 시를 쓸 수가 없고, “시집이 팔리지도 않고, 
위대한 시를 알아주지도 않기에 사진으로 하겠다”이러면 
제 사진이 어떻게 될까요? 유명인사 취미일 뿐이겠죠.
시든, 사진이든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작고 힘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진정성이 없다면, 
영혼의 힘이 없다면, 치열성이 없다면, 거기에 시가 흐르지 않는다면
어떤 분야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빛으로 쓰건, 시로 쓰건 그림으로 하건 노동으로 하건 악보로 하건
마찬가지 원리, 그것이 창조의 원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도 시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책도 절판시키며 잊혀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박노해라는 이름이 좀 알려진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죠. 
함께 운동하고 죽어가고 희생된 사람들과 
곁에서 애태우고 마음으로 응원해온 시민들 모두의 몫입니다. 
민주화 이후 많은 사람들이 주류 권력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처음처럼 작은 자로 돌아가 다시 새벽길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작은 셋방에서 정말 고독하게,  
분쟁 현장에서 전깃불이 없어 초를 켜고  
만년필로 꾹꾹 눌러 피로 쓴 시가 4천여 편이 넘습니다 
올 10월쯤에는 시집을 낼 생각입니다만, 
그 사이 전쟁이 터지지 말아야 할텐데…
10월에는 꼭 내야죠, 저도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입니다. 





사진도 감동이었지만, 글 캡션도 감동이었습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을 때 마다 같이 기록을 하시는 건지요?

제가 앞에서 글로벌 동네 사진관 차렸다고 하는 것이, 
같은 곳을 세 번 네 번 방문하면서 
그 분들의 사진을 뽑아가서 다 나누어 드리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칫날처럼 웃음꽃이 피곤 합니다. 
양갈비, 샤이, 무화과와 대추야자를 나눠 먹으며 
밤이 새도록 지나온 사연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습니다. 

안타까울 때는 제 사진 속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총에 맞아 죽고 자살폭탄저항으로 사라지고 
영영 불구가 되고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전해준 사진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흐느낍니다. 
이번 사진전의 아이들도 살아있어야 할텐데요…

저는 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드는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민들을 위로해주고,  또 주민 회의까지 소집해야죠. 
회의를 열면 무슬림 사회라서 남자들만 나타나거든요, 
그럼 제가 안 된다며 부인과 아이들까지 모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 모여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내 평생 아내가 저렇게 똑똑한지 몰랐다고 하시기도 하고…(웃음)
나오는 대화 기록해야죠, 인터뷰 해야죠, 그러다가 한 컷씩 찍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단편 소설만큼의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감상하시는 분들의 주체적 상상력과 감상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도록, 무미건조하게, 최대한 짧게, 역사와 정보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유명 작가들의 사진전이나 사진집을 보면 사진 캡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는 그게 법칙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획자 이기명 대표가 
사진작가야 말로 비주얼 인텔리젼스뿐 아니라 가장 뛰어난 지성과 
문사철에 대한 식견과 글쓰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그래야 뛰어난 사진작가인 것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서 썼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단, 길어지지 않게요. (웃음) 



마치는 인사

자연에는 진공 상태가 없습니다. 
제가 농사를 짓다 보면요, 
밭 한 귀퉁이에 파를 심어두지 않고 비워두면, 
곧 다른 것이 나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팽팽한 긴장 상태입니다. 
그 완벽한 조화로 평화로운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회와 정치에도 진공 상태가 없습니다. 
강자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세금 폭탄이라며 
세금 안 내면, 복지가 약해지는 것처럼 
사회는 늘 팽팽한 긴장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보다 더 거대한 삼투압이 작용하고 
탐욕의 포퓰리즘, 경쟁, 속도에 휘말리게 되면
우리가 느꼈던 좋은 마음은 금방 증발되고 맙니다. 

광야에 첫 비가 내리고 눈부신 꽃들이 피어나면 
저는 가만히 엎드려 바라보곤 합니다.  
자그마한 것들이 옆 동료들과 손을 잡고 단단히 뿌리를 내려 
모래바람 속에서 10달을 견뎌내고 피어난 꽃들이지요. 
제 자신이 그렇습니다. 

워낙에 제가 작고 힘 없고 약한 사람이기에 
늘 많은 분들께 의지를 합니다. 
그런데 너는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너의 기둥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이 사진전을 보시며 느끼셨던 우리 안의 선함과 의로움을 잃지 않도록
좋은 마음을 함께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면서 우리 사회에 꽃피워 갔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와의 대화 1] 지구시대, '자기 존재의 발 밑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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