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박노해시인의 '라광야'전을 다녀와서.
 글쓴이 : 차니
작성일 : 10-02-05 16:14 조회 : 3,347  

"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박노해 <나 거기 서있다> 중.

 

 

지난해 12월 TV를 보다 우연히 박노해 시인이 사진전을 연다는 엉뚱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곧 시인이 사진을 통해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빛으로 그리는 그림...

내가 보는 피사체를 가장 단순하게 압축하고 그 주제를 부각시킴으로 나머지 여백으로 하여금

보는 이에게 다양한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우게 하는 예술...

사진은 시와 닮았다.

 

한동안 일때문에 바빴고, 친구가 갑자기 병원신세를 져서 병문안 때문에 차일피일 미뤘던 전시장 방문을

23일 오후에 시도했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들은 극렬한 사건으로 눈을 사로잡는 현장감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었다.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하고 오는 건 아닐까하는 살짝 불안함을 갖고 겔러리M에 들어섰다.

전시관 안은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멀뚱하게 서있는데 추운 날씨에 전시장을 찾아주셨다며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아가씨가 차를 권한다.

이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을 찾아온 낯선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함께 마시자며 내어준다는 '샤이'라는 차한잔...

차의 따스함 만큼, 얼었던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이 약간 강하다라는 첫느낌과 여운이 곱게 오래가는 차맛이 인상깊다.

두잔을 마시면 친구가 되고, 세잔을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된다는 샤이차의 의미를 미리 알았더라면,

기꺼이 두잔을 더 마시고 오는거였는데... 아쉽지만, 두잔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사진을 둘러보았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휩쓸고간 황량한 장소에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맘씨 좋은 사람들, 순진한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

그 험한 세월의 시련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나이가 든 거친 손을 가진 노인들...

과연 그들을 보고 분쟁지역의 사람들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까...

기우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다.

로버트 카파나 베트남전의 참상을 현장에서 기록한 수많은 풀리처상 보도사진들의 참혹한 느낌을 주는

강렬함과 격렬함이 없는 밋밋한 사진들...

아니 차라리 삭막한 광야의 아름다움이 느껴저서 아름다움에 가까운 정적이며 서정적 사진들...

그런데 그 사진 옆에 박노해님이 쓰신 글이 조그맣게 붙어있다.

아이러니였다.

그 밋밋한 사진이 글 몇자와 만나게 되면서, 그 시간 그 현장에 뭍혀있던 강렬함이 온몸을 관통한다.

사진을 찍으며 느꼈을 철저한 관찰자 박노해님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들려오는 듯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 나스스로 정의내리기 힘들었지만, 분명 난 무언가를 받았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촬영했다는 베어진 올리브나무. 잘려나간 밑둥의 굵기가 그나무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처져 있는 그 나무 한그루를 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서방이라는 제국주의자들에게 겪고 있는

그 아픔이 어떤건지, 잘려나간 팔과 머리를 올리브나무에 투영한 것임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 많은 사진들이 내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텍스쳐들이 시끄럽게 그 공간에 가득찬다.

아프다. 부끄럽다.

그날 난 정말 그랬다.

그래서 난 금방이라도 울 수 있었다.

내 무지가 들통 났다는 부끄러움은 전혀 부끄럽지도 않았다.

 

롤랑 바토르'는 '카메라 루시다'란 그의 마지막 책에서 사진미학을 구분하는 잣대로

'스투디움' - 대상에 대한 호의와 맥락적 관심은 있으나 특별한 강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정을 의미함.

'푼쿠툼' - 라틴어로 점을 의미, 순간적으로 꽂히는 어떤 강렬함을 의미함.

두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스투디움studium 은 외부로부터 길들여진 앎'을 전제로 한 가장 일반적 사진 감상법이다.

푼스쿰punctum 은 사진의 세부적 구성요소 등을 통해 감상자의 뇌리 속으로 불현듯 찾아오는 정서적 울림이다.

보편적이고 분석적 맥락 이전에 감상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경험, 잠재의식 따위와 연결되어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

푼스쿰을 관통하는 미학적 특성은 논리성이라기 보다는 우연성이다.

 

"사진은 위험한 것이지만, 스투디움은 대상을 코드화 시킴으로서 사회와 화해시킨다.

푼쿠툼은 세부, 다시 말하면 부분적인 대상이다. 이 하찮은 세부가 사진에 관한 나의 시선을 흥분시킨다.

그것은 관심의 격렬한 변화, 하나의 섬광이다."

 

-지식e 2권에서 옳겨적음.

 

나는 그날 스투디움의 영상이 문자와 합쳐져 푼스쿰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박노해님이 그걸 의도한건 아닐지라도 그의 사진엔 분명 그 두개가 공존한다.

내가 좀 여유로운 주머니를 가졌다면,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사진은 그날 그곳에 걸려있던,

철조망에 둘러 쌓인체 몸둥어리가 베어져 버린 팔레스타인 살핏마을에 산다는 고통받는 올리브나무 사진일 것이다.

시인은 꿈을 꾼다.

언젠가는 잘려나간 가지에서 새싹이 돋는 희망의 올리브나무를...

나도 따라 꿈을 꾼다. 철조망을 걷으며....

 

전시장 중앙에서 박노해시인이 도록을 구입해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계셨다.

사진을 보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분이 그 공간에 있다는 걸 알았다.

도록을 구입한후 줄 맨뒤에서 그분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분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편안함, 두근거림으로 어지러운 설레임...

눈물날거 같은 현기증...

박노해...

'노동의 새벽'이란 시로 시작해 언제나 불합리한 핍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맨 앞에서 행동하셨던 사람.

그 댓가로 군사정권으로부터 수배와 체포, 고문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수형을 선고 받았던 사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서야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셨던 현대사의 아픔을 맨몸으로 받아낸 사람.

한국 민주화에 그의 공헌이 적지 않음에도 그 열매를 누리는 걸 마다하고, 홀연히 세상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이분이

1999년 부터 중동의 분쟁지역을 돌며 카메라로 그들의 현실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여전히 시인이지만, 글자로 된 시가 아닌, 카메라로 쓴 시를 들고 10여년만에 나왔다.

그들을 향한 진실의 왜곡, 그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양 떠들어대던 위선자에게

그가 현장에서 보고 체험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잠깐 본 인터뷰에서 박노해님이 그랬다.

"과거 한때의 명성으로 나머지 남은 인생을 울궈 먹고 사는것이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었다."

 

"분쟁지역이라 참혹한 사진일 거라 생각하고 왔는데, 사진의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게 더 마음아프네요."

그리고 행동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그분이 웃으셨다.

친필 서명을 마치고 사진 한장 찍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함께 찍자면서 제자에게 카메라를 주라 하신다.

아 이 기쁨... 하~

찾아와 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해주셨다.

몸둘바를 몰랐지만, 그의 따뜻한 체온이 너무나 행복하단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알려지면, 곤란한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늘 건강하시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진심으로~

박노해님과 전시장운영을 하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겔러리M을 나왔을때 그 알 수 없는 느낌들이 오래오래 기억 될거 같은

그래서 좀더 성숙해 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산병원에 입원중인 친구를 보러 지하철에 올라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도록을 꺼내 보았다.

 

'라 광야의 아침에' 라는 글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2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연기와 시체 썪는 냄새가 흐르는 페허더미에서

아이들과 여인들이 미칠 것만 같은 흐느낌 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그저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그치면 아이들과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다.

나밖에 읽어 줄 사람이 없는 작은 수첩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3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졌다.

절실한 필요는 창조를 낳는 걸까.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20리 밤길을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나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었다.

 

시인은 어둠 속에 모국어로 시를 쓰지만

절실하면 국경을 넘어 빛으로 시를 쓴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무릎 꿇은 낙타처럼 홀로 되 뇌이며.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침묵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시를 써왔다.

 

4

참혹한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과

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고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그 사건이 발생한 삶의 뿌리로 스며들어 간다.

수 천 년 이어온 삶의 터무늬 위에서 지속되는 삶,

경작하고 노래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마시고

기도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민초들 속으로

혈육처럼 나직이 스며들어 간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이들은 영혼의 지문을 누르듯

내 카메라의 흑백 필름에 가만히 아로 새겨져 온다.

 

중략~

 

나는 단 한 번도 그이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거나

자선의 구호 대상으로 보거나, 내 가슴 뛰는 삶의 대상으로 본 적이 없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페허더미에서도 협동하고 일어서는 강인한 생활력,

최선을 다해 절제하고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인간의 위엄,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쓸고 닦고 세우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신 앞에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광야의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경외의 마음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제치하와 전쟁의 폐허와

가난과 군사독재를 뚫고 일어섰던 힘,

민주화 이후 언제부턴가 잃어가는 빛나는 그 힘,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남은 종자 같은 재생의 힘이기에.

 

카메라를 들기 전에 나는 먼저

광야의 낙타처럼 무릎을 꿇는다.

 

.....................................................

박노해님의 사진을 대하면서 내가 느끼던 물음에 대한 답이 이 글에 다 있다.

내 모자란 무지와 함께...

지하철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아름다운 사람 박노해.

예술가의 작품이 누군가의 가슴을 크게 울리는건

그 사람의 진심이 그 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심이 선하고, 아름답기에

 

정말 어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그날 난 마그리트의 알에서 깨어나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있는 새 한마리를 만났고

니체가 말한 초인의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취해 행복했다.

내가 만난 좋은 사람이 한명 더 늘었다.

 

 

형이 올리브 나무를 심어서 교회에 팔자고 했을때, 난 반대했다.

일부 이상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부정이 강한 난, 올리브나무까지 싫었다.

그런데, 올리브나무가 좋아질 거 같다.

 

이 짧은 글을 쓰는데 벌써 7시간이 흘렀다.

다 못한 그날의 감정과 아직 보지 못하는 숨어 있는 느낌들에 대해선

앞으로 살면서 느긋하게 정리해야겠다.

아는 것만큼 본다고 한 괴테선생의 말처럼...

이슬람과 중동지역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박노해님이 만났다는 쿠르드 노동자당 PKK 소녀 게릴라 '나나' 가 남긴 마지막 고백.

"인생은 좋은 것입니다.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해요. 저에게 아름다운 삶이란,

 총구 앞에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에요."

 

그토록  절실하고 고결한 소망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

폭탄과 총알을 쏟아 붙는걸 주저함이 없는, 같은 인간들과 우린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한때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군인이었고, 부당한 명령이라도 결국 복종했을 나약한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목소리, 내 의지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란걸 배워나갈 것이다.

모든 인간의 종교...

휴머니즘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때문에...

같은 지구인으로서 이웃으로서 어울려 살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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