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칼럼] ‘빛으로 쓴 언어’와 바벨탑
 글쓴이 : 안병진
작성일 : 10-01-11 16:35 조회 : 2,038  

박노해 시인 앵글에 담긴
팔레스타인 사람들 보며
세계가 잊은 분리장벽 반추
지구적 연대감 되새겨야
 






지금 한국에서는 세계적 의미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넓게는 지구공동체, 좁게는 대한민국이
2010년 이후 10년간의 어젠다를 고민하기 위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박노해 시인의 중동 사진전이 바로 그 행사이다. 첨단 통역시설이 갖추어진 수천 평의
국제회의장도 아니고 충무로 좁은 길의 50평도 안 되는 조그만 갤러리에 겨우 30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지만, 나는 진정한 세계화와 ‘선진국’의 꿈을 가슴에 담고 싶은 이들은 새해를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에 들렀던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 지성인 호미 바바 교수는 세계화의 진정한 기준은
수출이나 수입의 양이 아니라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통찰을 적용한다면 당신은 이 사진 속에서 세계화의 지수가 매우 높은 이방인들을
만나게 된다. 뉴요커나 파리지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70%가 실직자이고 휴경지인
중동 쿠르디스탄의 ‘2등 국민’인 쿠르드인이 사진에 등장한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그들이고 처절하게 가난한 그들이지만 낯선 이를 보면 빵과 차를 들고 가라며 손을 잡아
이끈다. 바바 교수의 기준에 따르면 그들이야말로 세계화가 내면에 자리 잡은 이들이다.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따듯하게 건넨 샤이(중동식 홍차)를 손에 꼭 쥐고 한점 한점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수년간 뉴요커로서 중동을 외눈박이로만 보고 살아온 나의 미개함이
절로 부끄러워진다. 내가 12월 31일을 소위 세계의 중심이라 하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스펙터클을 보고 취해 있을 때 이 사진 속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세계가 잊은 분리장벽과
이스라엘 검문소 앞에 서서 분노하며 새해의 의지를 다진다.

이 거대한 분리장벽은 21세기 바벨탑이다. 통찰력이 가득한 영화 바벨은 인류가 오만하게
바벨탑을 세운 벌로 각각 다른 언어로 분열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태가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이 분리장벽이야말로 지구공동체의 세계화 수준을 가장 솔직하게,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주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노해 시인은 과거 80년대 ‘노동의 새벽’이란 시를 통해 대한민국 내의 분리장벽에 충격적인
도전장을 던진 바 있다. 그가 이번에는 ‘빛으로 쓴 시’를 통해 지구적 분리장벽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 분리장벽은 비단 팔레스타인 땅에만 박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한국어나 영어가 아니라 빛으로 쓴 시는 우리의 안과 밖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진정으로 지구 다문명공동체에 다가가는 세계어다.

나는 이스라엘 검문소 앞을 무겁게 지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진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눔문화 이상훈 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 사진은 박 시인의 절실한 눈빛을
보고, 순간 옷으로 가려준 어느 팔레스타인 여인의 도움으로 촬영이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그 여인은 곧 이스라엘 군인의 곤봉 세례를 받아야 했다. 비록 우리 가족은 시공간의
차원에서는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사진전 덕분에 순간 영원한 지구적 연대감을
형성했다. 진정으로 올해 멋진 세계화를 만들어가려면 우리들의 발걸음은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 피스(peace) 코리아!


헤럴드경제 2010.01.11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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