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를 듣고...
 글쓴이 : 추석
작성일 : 10-01-27 15:15 조회 : 3,292  

#1.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아주 우연히 동아리 방 한구석에서 발견한 시집.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겉표지 비닐은 이미 울어있었고, 종이는 그 옛날 오래된 흑백 교과서처럼 누렇게 되어 있었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 '뭐지, 이 겉표지의 포스는;;' 하며 시집을 넘겨 두 편 정도 읽었을까.

시가 다루고 있던 예사롭지 않은 주제와 현실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설적인 문체를 접
한 나는 그날로 그 시집을 시쳇말로 '먹었다'. 선진조국 대한민국,
허리띠 졸라매어 이루었다던 경제성장의 밑바닥에 드리워있던 노동자들의 진실을
노동자인 그의 목소리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2010년. 신문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박노해 사진전' 기사.

5년 전, 뇌리에 강하게 박혔던 그 이름을 다시 불러오는 기사였다.

사실 5년이나 지나서야 다시 불러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동안 그가 국내에서

거의 활동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유공자이자 80년대 민중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사람이지만 근 10년을 '잠수타고' 있었기에

우리 같은 젊은이들에겐 참 생소한 사람. 그가 지난 몇 년간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터키 등

중동지방 순례를 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이번에 전시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그저
'노동의 새벽' 한 권을 들고 달려갔다.

 

 

#2. 라 광야 - 빛으로 쓴 詩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 史'에서 어렴풋이 본

그의 사진이 가물가물했지만 그래도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세상 그 어떤 악에도 물들지 않은 것 같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 날 고생스레 왔다며(그날 기온 영하 십몇도;;)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중동식 홍차인 샤이(이거 맛있습니다. -_-b) 한 잔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래 잘 왔어' 라고 생각을 하고 약간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사진을 천천히 감상했다.

그 어떤 거대 미디어도 보여주지 않고 또 보여줄 수 없는 그만의 시각과,

우리가 그 동안 알지 '않았던' 저 너머의 진실이 '목숨 걸고' 찍은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오롯이 담겨 있음을 나 뿐 아니라 이곳에 온 모든 이들이 느꼈으리라

 

11.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Al Qamishli Kurdistan, Syria, 2008

한밤 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 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 공연.

단 한 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 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리아 사막의 무릎 꺾인 어린 낙타들

 

 

20. 폭격더미에서 살아나온 사나 샬흡(13세)Qana,Lebanon,2006

레바논 남부 까나 마을 집단학살 현장. 건물 지하실로 대피한 마을 사람들 중 65명이 사망했고

그 중 35명이 아이들이었다. 'A plane VS A child', 까나 마을 어린이 대학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류의 눈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폭격더미에서 살아 나온 사나 샬흡(13세)은

하루아침에 부모와 언니와 오빠와 집을 잃고 혼자서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사진을 관람하며 내가 느꼈던 첫 감정은 안타까움과 연민과 분노였지만 곧 그 감정은 중동인들의 굳건한 생명력과 끈기,

희망 섞인 금정과 작은 감사 속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사진을 보고 난 뒤

내가 그들의 삶 자체에 경외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인 듯 싶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처음에는 비참함과 안타까움, 분노 속에서 읽다 결국 더 나은 내일,

희망찬 꽃피는 노동의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덮게 되는 것처럼.

 

그의 시를 읽고 이렇게 그와 만나고 사진을 보게 된 반가움에 나는 우리의 만남을 새겨두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노동의 새벽'을 보이며 사인을 요청했다.

1984년에 나온 그 시집을 내놓는 21세기 대학생을 보며 그는 꽤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내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이 시집 들고 온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처음이라면서. 그리고 그는 대학생과의 대화에서 한번 보자고 말했다.

#3. 대학생과의 대화

 

정확히 일주일 뒤인 어제 19일 수요일. 나는 다시 그 갤러리로 갔다. 저녁 7시부터 하는 대학생과의 대화를 들으러.

약 사오십여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7시쯤 대화를 시작했다. 그 동안 좁은 공간에서 좁은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온

여러분들을 다시 이 좁은 공간에 앉혀 미안하다는 인삿말과 함께.

 

 

1. 왜 나라 밖으로 가 활동을 하셨나요?

 

-우리는 지구별에 태어난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국가의 틀에 갇혀 사유하기 시작했죠.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기에, 우리 삶의 상당부분을 외국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기에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느 날 갑자기 유명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잘해 얻은 게 아니기에 불편했어요. 그리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기 싫었죠. 그래서 광야로 떠났습니다.

 

 

 

2. 자유의 본질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내가 입고 먹고 꿈꾸고 생활하는 대로 67억 인류가 살아도 좋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지구시대 사회경제적 자유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내 삶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에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의 절대원칙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박노해 시인. 대학생과의 대화

 

 

3. 작고 힘없는 우리같은 소시민들은 일견 역사 앞에, 현실 앞에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까?

 

-못 나고, 힘없고 작은 사람들은 함께 손을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회성 자선이 아닌 지속적 관심, 고민 행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력하지 않습니다. 힘과 영향력과 돈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들이 세상을 뭘 얼마나 더 인간답게 만들었습니까. 그보다는 우리같은 이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이 가공할 폭력의 시대속에서 우리가 그나마 이만큼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4.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에게 의미 있는 대학생활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요즘 우리 대학생들 정말 안타깝습니다. 비싼 사교육 들여 대학 와 또다시 정신없이 쫓기듯 살며 스펙 쌓습니다. 푹 자고 푹 쉬고 맘껏 놀고 대자연을 느낄 겨를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취업하면 어떻습니까? 사십 줄이면 짤립니다. 열심히 살라 해서 살았는데 삶의 질은 어떻습니까? 생각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대학생들은 이러한 세태에서 한 발짝 물러나 '큰 물음을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큰 물음을 끝없이 던지며 나 자신에게, 현실에 부딪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삶은 유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경마장의 경주마라는 것, 그대가 아무리 친구를 이기고 스펙 쌓고 경쟁력 갖춰봤자 결국 트랙 위라는 것, 그 트랙을 벗어나 초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초원으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빵을 구하러 가는 남매 Srobin, Lebanon, 2006

몇 번이나 체포되고 억류되며 찾아간 스로빈 마을. 어른들은 부상과 탈진으로 망연자실인데 아이들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이다. 공포와 절망의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그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앞장 서 올라가고 있으니.

 

 

 

5. 초원으로 나아가기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허나 전 4학년입니다. 이제 늦은 것은 아닐까요?

 

-대학 4년이 삶의 전부가, 젊음의 전부가 아니죠. 조금 더 크게 보십시오. 사람은 첫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겠다 하는 그 첫마음.. 4학년이라는 신분은 첫 마음을 내려놓고 무작정 사회체제로 편입하기에는 너무도 젊은 때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내가 잘 살았는가를 반드시 묻고 회상합니다. 이에 자신있게 답하기 위해선 조금 느리게, 늦게 가더라도 첫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대로 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면 편안할 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불편은 몸의 불편과는 달라서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 체제는 그러한 여러분들에게 끝없는 공포와 두려움과 상처를 안겨줄 겁니다. 허나 그 공포와 두려움과 상처 속에서 여러분의 첫마음과 의지는 더욱 더 굳건해질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첫마음과 행복을 지켜주는 건 스펙이 아닙니다.

 

 

 

6. 국제기구 활동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조언해주고픈 말이 있습니까?

 

-UN사무총장, 국제기구공무원, 긴급구호 스타가 되려는 젊은이들은 그저 또 하나의 루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사랑을 세계는 원하지 않습니다. 성공도 하고 사랑도 하고 돈도 버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젊어서부터 성공과 사랑과 돈과 놀이를 이리저는 재는 사람이 국제기구 뭐 그런거 되면 과연 어찌될까요? 사랑과 열정만으로 젊음을 내던진 김문수 같은 사람도 결국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변했는데..

 

 

7. 국경 너머 젊은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 쿠르드족 분리독립 여전사들, 그래봤자 대부분 10대입니다, 그들이 저에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달라며 한 말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쪽 사람들 우리를 잘 압니다. 전사들이 만날 군사훈련만 하진 않죠. 사상교육도 받고 세계정세도 공부합니다. 어쨌든 그들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 삶은 소중합니다. 주어진 삶을 자기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래서 저는 총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 관련 영상, 그 80년대 민주열사들 장례식 영상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장례식처럼 우리도 독립운동 장례식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게 그들의 바람이었습니다.

 국경 너머에 이렇듯 진짜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동정, 구호물품, 연민따위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8. 향후 계획은?

 

- 계획을 세우진 않습니다. 그저 사랑 안에서 저 자신을 불사를 뿐이죠. 사랑 안에서 혹 길을 잃으면 사랑이 저를 또 어디론가 데려다 줄 것입니다.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이 사회가 정의롭고 살만하다면 스펙 쌓고 여기 다신 오지 마십시오. 허나 이 사회가 심각한 문제가 있고 양극화, 분쟁, 생태재앙 등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 같고 뭔가 마뜩찮으면 저항하십시오. 산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타고 올라갈 때 바로 삶이 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사진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

 

 

 

나는 단지 이 토끼몰이식의 폭력적 제단의 시대,
'입 닫고 그저 가라는 대로 가'를 읊어대는 레디메이드 사회,
진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눈뜬 봉사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고민해왔고 지금도 더 나은 무언가를 조금씩이나마 모색하는 한 대학생일 뿐이다.
그리고 진정 구도하는 마음으로, 일면식도 없는 그의 시에서 느꼈던 열정과
믿음의 자세로 그의 사진을, 또다른 시를 읽어내려갔을 뿐이다.

 

라 광야 - 박노해 사진전 . 1/28일까지 갤러리 M (을지로 3가 중부 경찰서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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